해방 후 “아무도 흔들 수 없는 새 나라를 세우자”했던 가슴 벅찬 열망은 전쟁의 포화 속에 제대로 피어보지도 못하고 사그라들었습니다. 전쟁의 심각한 폭력성과 참상 속에서도 문화·예술인들은 저마다의 시각으로 시대적 아픔을 들여다보고 이를 예술로 승화시키고자 하였습니다. 이번 전시는 1950년에 일어난 6·25전쟁을 문학과 그림, 영화와 음악으로 들여다보고, 아직 치유되지 않은 미해결의 역사를 기억해보고자 합니다.
1945년, 길고 긴 식민 통치에서 벗어난 기쁨 속에서 자주 국가 건설에 대한 민중들의 염원은 뜨거웠습니다. 우리말과 글로 읽고 쓸 수 있는 자유를 얻게 되면서, 제대로 된 창작활동이나 문화생활에 대한 갈증은 폭발적으로 쏟아지는 출판물들을 통해 해소되었습니다. 수많은 출판사들이 무수히 설립되었고 이와 함께 책의 표지나 도안 등을 디자인하는 장정 작업이나 삽화 같은 인쇄미술도 함께 호황을 이루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회·역사·체육·음악 등 다양한 분야의 지식에 대한 수요가 폭증함에 따라, 각 분야에 걸쳐 이론서나 간행물, 잡지 등을 만들고자 하는 풍조가 일어났습니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문화·예술인들은 단절된 전통을 재건하고 나아가 새롭고 자주적인 시대 문화를 창조하고자 저마다 가슴 벅찬 이상을 품고 작품 활동을 펼쳐 나갔습니다. 바야흐로 민족 문화의 새로운 개화기였습니다.
1950년, 전쟁으로 인한 엄청난 파괴로 말미암아 한반도에 사는 모든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기본적인 삶의 뿌리가 흔들리는 경험을 겪었습니다. 생존이 다급했고 당장 눈앞의 배고픔이 절박했던 궁핍한 현실에서 문화·예술계 전반에 거쳐 작품 활동은 위축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문화·예술인들은 작가가 아닌 생활인으로서 생계를 이어가야 했으며, 선전의 도구로 이용할 수 있는 대상으로서 전쟁에 동원되었습니다. 또한 광복 직후부터 발생한 정치·사회의 좌·우 이념적 갈등은 문화·예술계에도 첨예한 대립을 낳았고 이는 전쟁이라는 혼란한 상황 속에서 생과 사를 가르는 경계가 되었습니다. 문화·예술인들의 전쟁 경험은 참혹한 전투의 주체이자 관찰자로서, 때로는 후방에서의 전의를 고조시키는 역할로서, 때로는 현실 도피적 이상주의자로서 작품에 발현되었습니다.
이데올로기 전쟁인 6.25전쟁에서 심리전의 역할은 굉장히 중요했습니다. 오랫동안 남침을 준비해온 북한 역시, 문화·예술분야가 가장 효율적인 체제 선전의 수단이라는 것을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문인과 화가를 비롯한 영화인, 음악인 등의 수많은 문화예술인들은 정치이데올로기를 선전하고 전의를 고취시키기 위한 도구로, 혹은 북한 체제에 반하는 반동분자로 분류되어 납북되거나 희생되었습니다. 전쟁과 납북으로 인한 절필(絶筆)은 이후 우리나라의 문화·예술계에 커다란 공백과 상실을 안겨주었습니다.
1953년, 전쟁은 끝이 났습니다. 하지만 한반도는 여전히 분단의 굴레 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전쟁 중 북한으로 끌려간 납북 문화·예술인들은 붓이 꺾인 채 그들의 작품 세계는 미완의 상태로 남겨졌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도 그들을 문학과 그림, 영화와 음악으로 기리고 있는 이들이 있습니다.